[현장] EIDF2025 상영 및 GV
- Moving Moments Studio
- 6일 전
- 6분 분량
2025년 8월 30일 오전 11시 서울 에무시네마, 제22회 EBS국제다큐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수능 창시자; 한국 교육의 프랑켄슈타인>이 상영됐습니다. 이후에는 백진우 감독과의 GV(Guest Visit)가 이어졌습니다.

감사하게도 8월 19일 예매 첫날부터 전 좌석 매진됐습니다. 상영일 아침 뇌우에도 대부분 자리에 함께해 주셨습니다.

<수능 창시자; 한국 교육의 프랑켄슈타인>은 78분 길이의 장편 다큐멘터리입니다. 시놉시스는 아래와 같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의 작품은 괴물이 되었다. 그는 죽는 날까지 잘못을 바로잡으려 했다.
'수능창시자' 박도순. 그가 30년 된 수능을 마주했다.
"이런 정도의 시험이라면, 차라리 없애는 것이 낫다." 누가 수능을 만들었을까.

상영을 마치고 나서는 약 20분간 GV가 이어졌습니다. EIDF 프로그램 팀장 이원일님이 모더레이터로 진행해 주셨습니다.
아래는 GV 내용입니다.
【이 팀장】
먼저 궁금한 건, 감독님께서 왜 수능을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만드셨는지, 원래부터 수능 제도에 관심을 갖고 계셨는지가 좀 궁금합니다.
【백 감독】
원래 교육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고,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시민단체를 만들어서 8년 동안 활동했어요.
‘프로젝트 위기’라는 단체인데, 거기서 결론적으로 느낀 건 이런 거였습니다.
'아, 이게 제도를 바꾼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구나.' 근데 그걸 가장 단적으로 보여줬던 사례가 수능의 창시자라 불리는 박도순 교수님 이야기였고, 그래서 이걸 너무 늦기 전에 완성된 형태로 깊이 있게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하다가 드디어 나름 결과물을 만들어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팀장】
그러면 감독님께서도 우리 모두가 고등학생이었던 시절을 겪으셨으니, 입시 공부를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고등학생이야말로 입시라는 최전선에 있는 나이니까요. 감독님께서는 고등학교 때 입시 공부를 하면서 문제점 같은 걸 느끼시지는 않으셨나요?
【백 감독】
사실 엄청 열심히 공부했던, 소위 말하는 찌질이였고요.
범생이에 가까운 학생이었는데, 그러면서도 ‘왜 공부는 재미있을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재미없을 수밖에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시민단체를 만들었어요.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깨달은 건, 이게 제도 때문이 아니라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욕망과 타협이 뒤엉켜서 수능이 만들어지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대학생 때는 좀 많이 바뀌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팀장】
그럼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면서 고등학교 때 가졌던 생각과는 많이 바뀌신 건가요?
【백 감독】
네. 일반적으로는 저도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공부 하고 싶지만 제도와 사회 분위기가 이러니까 어쩔 수 없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나부터 시험공부에 얽매이지 않고 정말 좋은 공부를 하면 변화가 시작되는구나를 깨닫게 됐죠.
그래서 과거와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러한 고민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제 첫 작품인 <당신은 학생인가>라는 작품이었고요. 이렇게 살짝 홍보를 해보겠습니다.
【이 팀장】
조금 어려운 질문일 수도 있는데, 좋은 공부가 뭘까요?
【백 감독】
정말 단순하게요. 제가 대학교 때 했던 게 ‘시험공부 안 하기 프로젝트’였습니다. 중간고사 직전에 제주도 놀러 가고, 대신 조건이 뭐냐면 시험 직전에 벼락치기해서 다 외우는 게 아니라 평소에 수업을 재미있게 듣고 그걸 있는 그대로 (시험 답안에) 쓰자는 거였어요. 특히 대학은 논술형이 많으니까요.
해 보니까 시험이 두려운 게 아니라, 내 솔직한 생각을 시험에 적으면서 교수님과의 소통 창구가 되더라고요. 피드백도 ‘못 외워서 못 썼네’가 아니라 ‘내 생각에 이런 모순이 있구나’라는 식으로요. 그게 되게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좋은 공부는 멀리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팀장】
네, 저도 대학생 때는 1~2학년 때 외워서 공부하다 보니 학점이 낮았는데, 3~4학년 때는 시험 공부에서 벗어나려고 하니까 오히려 학점이 잘 나오더라고요. 말씀에 공감이 많이 됩니다.
그리고 시민단체 활동을 8년간 하셨다고 하셨는데, 그 단체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백 감독】
시작은 교육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알고 싶어서 콘퍼런스 같은 걸 열었고요.
그러다 보니 ‘아, 나부터 바뀌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막판에는 거의 종교 단체처럼 ‘이번 주는 무슨 공부하셨습니까? 마음가짐은 어떠셨습니까?’ 이런 식으로 성찰도 하고,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담기도 했습니다.

【이 팀장】
그럼 이제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해야 할까요? 영화 제목 속 인물, 박도순 선생님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수능 창시자이고, 부제가 ‘프랑켄슈타인’이잖아요. 사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 아니라 괴물을 만든 과학자를 뜻하는 말인데, 썩 좋은 의미는 아닌 것 같아요. 비판적인 의미 같기도 한데, 또 그렇다고 교수님을 직접 비난하는 느낌은 아니더라고요. 제가 조사하기로는 교수님이 1942년생이시던데요?
【백 감독】
출생신고를 늦게 해서 실제로는 41년생이라고 합니다.
【이 팀장】
일제강점기 때 태어나신 분이시네요. 나이를 모르고 영화를 보면 너무 정정하셔서 놀라실 것 같아요. 선생님을 섭외하는 과정, 그리고 촬영하면서의 비화 같은 게 궁금합니다.
【백 감독】
다행히 시민단체 활동할 때 저희가 연사로 초청해서 인연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관계가 있었고, 설득 과정이 조금 필요했습니다. "교수님 제발요" 하면서요.
프랑켄슈타인 언급을 해주셨는데, 사실 사람들은 프랑켄슈타인을 괴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과학자 이름이잖아요. 저는 그게 오히려 박도순 교수님과 겹친다고 느꼈습니다. 과학자가 평생 괴물을 바로잡으려 노력하는데, 교수님도 수능과 관련해 늘 발언하시거든요. ‘수능 없애야 한다’는 말씀을 매년 하세요. 그게 겹쳐 보였습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의미라기보다는 씁쓸한 마음을 담은 겁니다.
【이 팀장】
저도 영화를 보면서 똑같은 마음이 들었는데, 흥미로웠던 건 이 영화 구성이 한국 현대사와 병치되면서 정치 민주화와 교육 민주화를 함께 다루는 듯한 느낌이더라고요.
근데 민주화가 됐다고 생각한 이후에는 발전이 없고 고여버렸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같은 수능이라도 94년도 수능과 지금 수능은 너무나도 다르더군요.
좀 확장해서 말하자면, 어떤 제도라는 건 어쩔 수 없이 고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 대중들은 원작자를 욕하기 시작하죠. “왜 이렇게 만들었느냐”라고요.
그런데 이 영화는 원작자에 대한 단순 비난이 아니라, 그분의 입장을 직접 들어봐야겠다는 태도가 담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느낀 게 맞을까요? 감독님은 박도순 선생님을 어떤 태도로 묘사하고 싶으셨나요?
【백 감독】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보면 괴물이 된 건 창시자의 의도가 아니라 사회가 만든 거잖아요. 나중엔 그 점을 소설 속에서도 비판하고요.
정확하게 짚어주셨습니다. 제 바람은 결국 ‘우리 사회는 우리 개개인의 합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으로 이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 팀장】
그런 고민이 영화에 잘 담겨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게 일종의 저널리즘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는데, 사회 문제 제기를 하실 때 수위 조절에 대한 고민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어디까지 비판하고, 어디까지 대안을 제시할지 말이죠. 보통 방송국에서 수능 비판 다큐를 만들면 대안까지 제시하곤 하는데요. 이번엔 문제 제기의 수위를 어떻게 정하셨나요?
【백 감독】
사실 그걸 자제하지 못한 게 제 첫 작품이었습니다. 거기는 끝까지 갑니다. 그런데 그게 늘 현명하진 않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어요.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는 명확히 선을 그었습니다. '제도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거기서 끝낸다, 이게 목표였습니다.

【이 팀장】
네, 그러면 제 질문은 여기까지 하고 관객분들 질문을 받아볼까 합니다. 질문해주시는 분께는 선물을 드리고 있으니, 영화를 재미있게 보신 만큼 질문 부탁드립니다. 혹시 질문 있으신 분? 네, 앞에 계신 분.
【관객 1】
네, 감독님 작품 잘 봤습니다. 차종관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교육 시민단체 활동을 하셨고, 이번에는 수능 창시자를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만드신 것 같은데요. 그 교육 시민단체를 만들게 된 계기, 또 수능 창시자를 찾아가며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 개인적 경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소개 부탁드립니다.
【백 감독】
중학교 때 문학 공부를 하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소설가가 되고 싶었을 정도였어요.
문학 작품 속 상징을 통해 사회 담론을 다루는 게 너무 흥미로웠는데, 막상 교과서 속 문학은 생선 뼈 발라내듯 다 죽어버린 느낌이었죠. 그래서 늘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고3 때 역설적이게도, 국어 비문학 지문에서 공자의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접했어요.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부하지 말고, 참된 나를 밝히기 위해 공부하라는 뜻이죠. 그 순간 세상이 환해지고 눈물이 날 만큼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거기에 꽂혀서 시민단체 이름도 ‘프로젝트 위기’로 지었고, 제 활동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그게 개인적 경험의 시작이었고, “어떻게 하면 위기지학을 실천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의 연속이었습니다.
수능은 결국 우리 사회의 욕망과 타협의 투영 그 자체라고 느껴졌고, 꼭 다루고 싶었어요. 이건 제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관객 2】
저는 이나연이라고 하고요. 백진우 감독을 20대 초반부터 꾸준히 지켜본 건 아니지만 파편적으로나마 봐왔습니다.
백 감독님이 늘 문제의식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행동하며 변화를 겪는 모습이 존경스러웠어요. 첫 다큐멘터리에도 참여했었는데, 그때보다 이번 작품에서는 문제의식이 많이 다듬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어떤 생각의 변화가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백 감독】
다큐에 나오시는 교육열 전문 교수님도 계시지만 처음에는 한국교원대 오성철 교수님을 모시려 했습니다. 당시 저는 한국의 교육열을 굉장히 비판적으로 보고 있었어요. 뒤집어 엎어야 한다는 입장이었죠.
근데 사전 미팅에서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육열이 꼭 나쁠까? 민주화도 교육열 덕분일 수 있지 않나?”라고요.
그날 카메라까지 들고 갔는데 논리적으로 제가 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작업을 못 했어요. 제 관점을 교정할 필요가 있구나 싶었고, 그게 이번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나리오도 전반적으로 다시 검토했고요. 그런 걸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팀장】
영화감독들 사이에 '첫 작품은 뜨겁고, 두 번째는 차갑고, 세 번째는 그 사이 어딘가'라는 법칙이 있다고 합니다. 저희도 시간상 마지막 질문만 받고 끝내야 할 것 같은데요.
【관객 3】
감독님, 수능에 대한 이상과 현실을 면밀히 담으려는 노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작품을 만드시면서 가장 이상적으로 꿈꿨던 모습은 무엇인지, 또 가장 부딪힌 현실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작품 속 다양한 소품과 화형식 촬영 같은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합니다.
【백 감독】
너무 감사하게도 이번 작품은 EIDF와 KOCCA에서 제작 지원을 해주셨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체 예산이 천만 원이었습니다. 사실 그 돈으로 가능한 작품은 아니었어요. 엄청난 노동 착취와 열정페이가 담겨 있는 작품입니다.
나왔던 뉴스도 다 실제가 아닙니다. 저작권 문제 때문에 직접 다 만들어야 했거든요. 그래서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모든 소품과 장면에 손이 들어갔습니다.
한편으로는 너무 감사하면서도, 검증되지 않은 작품에 이렇게 큰 돈을 받는 게 맞나 고민했습니다. 또 지속 가능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담겼다는 점에서 지원이 조금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도 있고요. 이런 성찰은 앞으로도 계속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팀장】
네, 이제 마무리해야 할 시간입니다. 저널리즘 다큐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당위성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관객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백 감독】
오늘 아침 천둥소리에 깼는데, 비 오는 날에도 와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한 분 한 분 꼭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이 팀장】
여기 에무시네마 1층에 카페도 있으니 GV 끝나고도 못다한 이야기 나누시면 좋겠습니다. 이것으로 관객과의 대화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날은 백진우 감독의 작품이 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 날입니다.
작품을 좋은 자리에서 소개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신 EBS국제다큐영화제와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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